식섭송 혹은 뉴웨이브

” Men At Work는 뉴웨이브의 뉴웨이브였다. ”
                                        -Brian Eno

여느때처럼 웹을 뒤지다 얼핏, ‘식섭송’이라는 제목의 ‘엽기송’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다.  뭘까 하는 호기심에 검색을 해보았다니, 이 생각만큼 광대하지 않은 네트에서 꽤 히트를  했었는지 여기저기에 ‘식섭송을 들어보고 싶어요’ 내지는 ‘ 엽기 : 식섭송’따위의 게시물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수 있었다. 나 역시 대체 무슨노래인지 궁금함에 깨어진 링크 몇개를 지난후에 아직 살아있는 스트리밍 하나를 발견했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후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다.

Men At Work의 Down Under .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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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뉴웨이브는 분명 뉴로맨틱스와는 다른 단어였다. 그것은 신스팝과도 달랐으며, 펍록 혹은 컬리지록과도 동의어가 될수 없었다. 아직오지 않은 시대의 모던록도, 파워팝도 서서히 고개를흔들며 물결을 흔들던 쟁글팝과도 같은 단어는 아니었다. 혹자는 펑크의 다른이름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마치 마이블러디 발렌타인을 록밴드라고 부르는것과도 같은 오류이다. 어떤의미에서 마이블러디 발렌타인은 락밴드였을지도 모르지만, 대체 락이라고 부를만한 성질의 어떤것들이 그들의 창백한 기타노이즈 속에 남아있었던가? 이는 뉴웨이브에도 똑같이 통용된다. 슬리츠와 B-52는 대체 어떤 공통점으로 묶을수 있을까. 그들가운데 어떤 공통점으로 우리는 그들을 뉴웨이브라고 부를수 있었던걸까. 그럼에도, 그어떤 단어도 뉴웨이브와 동일어가 되지 못했음에도 뉴웨이브는 그 모든걸 포괄해버린다. 듀란듀란과 디페쉬모드가 뉴웨이브였듯 블론디와 토킹헤즈도 뉴웨이브였다. 텔레비전과 모텔즈가 뉴웨이브였다면 엘비스 코스텔로와 블래스터즈역시 뉴웨이브여야 한다. 모든것은 새로워야 한다는 믿음. 그리고 그 새로움과 우리들 감성사이에 놓여진 아득한 간극. 당신과 나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 그 다름만이 유일한 가치라는 신앙. 부수어지는 형식과 만들어지는 형식들. 물결치는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모두 발맞추기 버겨워 보이는 무책임 한 미래지향에 대한 찬양. 찬송. 펑크,노이즈락, 스래쉬팝,고딕,모드, 그리고 서서히 그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유아기의 일렉트로니카. 수도없이 많은 서브장르들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시장바닥같은 80년대 뉴웨이브 신에서 오로지 이것만이 진리였다. 진실이었다. 듀란듀란과  REM을 묶을수 있는 하나뿐인 ‘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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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81년엔.
여전히 토킹헤즈는 펑크밴드였으며, 그린 가트사이드(Ex.스크리티 폴리티) 는 런던에서 마르크스를 읽고 있었다. 런던에서, 혹은 뉴욕에서 맨체스터에서의 저마다의 움직임들은 저마다의 광채들은 그들을 무언가로 묶을수 있는 구심점을 찾아볼수 없었다. 아직 그것은 서로의 각기 다른 ‘소리’들이었을뿐, 한시대를 관통했던 물결은 아니었다. 잘차려입은 스팬도우 발레와, 어떤의미에선 비범(개인적으론 그다지 비범한것 같진 않아보이지만) 해보이기도 했었던 울트라복스만이 자신들을 ‘뉴웨이브’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 Men At Work는 데뷔앨범 Business as Usual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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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ing in a fried’out combie
n a hippie trail’ head full of zombie
I met a strange lady’ she made me nervous
She took me in and gave me breakfast
And she s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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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도 런던도 맨체스터도 리버풀도 (심지어 하와이도 아닌) 생경스러운 Land Down Under-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날아온 이 촌스런 사내들은 이 앨범에서 너무도 많은것들을 정의내려 버렸다. 듣도보도 못했던 어이없는 브레이크 비트와 기묘한 영어발음. 비꼬는듯한 기타리프에 실린
무덤덤한 자기인식. 거지같은 스테이지 매너와, 눈꼽만큼도 패셔너블하지 못했던 스타일. 그들은- 블론디처럼 세련되지도, 스팬도우 발레처럼 잘차려입지도, 프랭키고즈투 헐리웃처럼 섹시하지도 않았다. 조이디비전처럼 어둡지도, 팝그룹처럼 급진적이지도, 엘비스 코스텔로처럼 냉소적이지도 않았다. 그 어떤 밴드와도 닮지도, 그 어떤 신에 영향을 받은듯 보이지도 않았다. 방진실의 플라스크 를 연상시키는 수많은 일련의 재미없는 ‘실험’앨범들중에서도 도무지 그런 식의 접근이란 본적이 없었다. 그 어떤 클럽에서도 그런 사운드는 들려준적이 없었다. 그것은 대륙아래 버려진 땅에서 밀려온 정체모를 ‘그어떤’것 혹은 ‘놀라움’이었다. 누구도 그런식의 사운드는 생각해본적이 없다.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80년대에 밀려든 어떤 종류의 ‘물결’이었으며, 그 단어 자체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던 ‘뉴웨이브’에 대한 진정한 ‘의미’였다. 미지. 혹은 두려움. 낯설만큼 새로운것들에 대한 무감각한 찬양. 데뷔앨범 한장을 발표했을 뿐인 이 이방인들은, 서로 다른곳에서 서로 다른 사운드에 열중하던 일련의 움직임을 거대한 물결로 모았다. 뉴웨이브. 80년대는 1980년이 아닌  바로 1981년에 그런식으로 시작하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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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많은것들이 바뀌었다. 그린 가트 사이드는 마르크스를 던저버렸고, 스크리티 폴리티는 일렉트로니카의 옷을 걸쳐입은채 뉴웨이브란 이름으로 세상에 등장한다. 토킹헤즈는 더이상 펑크밴드일수가 없었고, 닐 테넌트는 잡지사에 사표를 내버렸다.. 빈스클락은 디페쉬 모드를 때려치웠고, 마틴고어는 이후 이십여년 가까이 지속될 자신들의 진화의 움직임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폴리스는 싱크로시티를 위한 긴 동면기에 들어갔으며, REM은 조지아에서 그들의 첫번째 싱글앨범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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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ome from a land down under
Where beer does flow and men chunder
Can’t you hear’ can’t you hear the thunder
You better run’ you better take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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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에 발표한 그들의 두번째 앨범은 신통치 못한 평가만이 돌아왔다. 슬럼프였는지 혹은 2년전 그들처럼 그렇게 빛날순 없었던건지는 모르겠으나, 싱글 커팅된 It’s Mistake만이 소폭히트했을뿐, 다른 여느 원히트 원더처럼 서서히 기억속에서 그들은 사라져갔다. 같은해, 토킹헤즈는 브라이언 이노의 프로듀싱 아래 그들의 최고걸작 Remain In Light를 발표한다. 댄셔너블한 비트와 자극적인 가성으로 중무장한 스크리티 폴리티가 큐피드앤 프시케로 돌아온건 다시 그로부터 이년이 지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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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4년. 다시 들어본 그들의 데뷔앨범은 생각만큼, 혹은 기대만큼 ‘새롭게’들리진 않았다. 이십여년. 수많은 스타일과 수많은 사운드들이 각기 ‘새로움’이라는 명찰을 가슴에 새긴채 세상 에 등장하고 사라져 버린 지금, 그들의 기괴한 기타리프는 촌스럽게 들리기도 하고, 기묘한 흥분 을 자아냈던 그들의 이상한 발음은 이젠 단순한 폭소를 자아내기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십삼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그들의 그 옜날음악을 도무지 귓가에서 떼낼수가 없는 이유는,  어쩌면 나라는 인간이 정말로 매혹되었던건 뉴웨이브의 그 잘 만들어진 사운드가 아니라, 약간은 서글플만큼이나 집요했던 새로움에 대한 그들의 무목적스러운 동경이기었기 때문인건지..

아울러, 단순히 의 명곡이고 나발이고를 떠나 자신들의 땅에 대한 경멸섞인 속어인 Down Under를 제목으로 썼던, 그들이 이 자조적이고 (약간은) 슬픈음악에 대해, 단순히 발음을 가지고 놀리고 깔깔대며 폭소를 터뜨리는것 이외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못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저열함에, 난 여전히 화가 치밀며, 앞으로도 줄곧, 화가 치미리라. 하긴, 나하나쯤 분노한다고 뭔가가 달라질리는 없을테지만. 적어도, 취향 혹은 사상같은 걸 떠나 살아나가며 지켜나가야 할 하나의 태도로서 – 난 줄곧 분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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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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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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