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시대

James B. Lansing이, 그의 사업파트너였던 Ken Decke와 손을 잡고 LA에서 ‘Lansing Manufacturing’을 차리게 된것은 1929년의 일이었다. 1927년 ‘재즈싱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세상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
1930년,’Lansing Manufacturing’사는 극장용 음향 설비를 독점공급하던 ‘Western Elec
tric’사와 손잡고, 새로운 스피커를 공급하게 된다. 랜싱은 기존의 원형 보이스코일을 리본형으로 바꾸어 대역이 넓고 능률이 뛰어난 스피커를 개발하게 되었고, 이는 기존의 스피커들을 모두 대체할만큼 큰 성골을 거두게 되었다. 1934년 랜싱은 15인치 우퍼를 커다란 베이스 리플렉스 통에 집어넣고 혼 트위터를 장착한 최초의 2WAY 시스템을 발표한다. 그즈음, 일련의 뮤지컬 영화들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던 MGM은 랜싱의 스피커를 자사의 표준시스템으로 채용하게된다.
미국은 대공황의 지옥속에서 길을 잃은채 헤매고 있었지만, 극장은 관객들로 미어터졌으며 그 공간의 한편에선 랜싱의 스피커들이 과잉된 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풍성한 저역 과장된 소리, 세상은 결핍의 대기로 물들어있었어도 랜싱의 스피커들은 나날이 풍요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소리에서 행복한 과잉으로 채색된 미래를 꿈꾸었을까. 대책없는 낙천주의, 아름다운 화면 더할나위없이 현실성 없었던 MGM의 뮤지컬 영화속에서 지나간 그 하루하루를 희망이라고 불러야할까 도피라고 불러야 할까.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했던 1938년, 랜싱은 동업자였던 켄데커가 비행연습중 사고로 사망하는 불행을 겪게된다.  순수한 엔지니어였던 랜싱을 대신해 거의 모든 경영을 도맡아하던 데커의 죽음은 곧 재정상태의 악화로 이어지게 되었고 결국 랜싱은 Western Electric사에서 퇴직한 엔지니어들이 세운 Altec사에 회사를 매각하게 된다. 자사의 스피커들에 랜싱의 공법을 사용하길 원했던 알텍사에 랜싱은 자신의 이름을 같이 넣어줄것을 요구했고, 지금도 남아있는 Altec Lansing corp 는 이렇게 탄생하게 된다.
유럽은 전쟁의 불안감으로 달아오르고 있었지만, 알텍랜싱의 기술담당 부사장으로 임명된 랜싱은 이에 개의치 않고 스피커 설계에 온 정성을 기울였고, 1943년 동축형 스피커 시스템인 NO. 604와 2WAY A-4를 발표한다. 이 A-4 시스템은 최초로 뒷명을 밀봉시킨채 제작한 저음용 인클로저가 사용되었다. 단순히 유닛이 아닌 인클로저에서 울리는 소리를 이용하여 그 이전까진 상상도 할수 없었던 저역대를 이 스피커는 얻어낼수 있었다. 심지어 그는 잠수함의 자성탐사기에 사용되던 알니코V영구자석을 스피커에 이용하기까지 했는데, 이런 영구자석을 스피커에 적용한것은 랜싱이 최초였었다.
유럽의 어느 길위에서, 아시아의 어느 길위에선 수많은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채 서로를 죽이고 다시 죽어갔어도, 그에게는 오로지 스피커 뿐이었다. 설계가 시작되면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며, 그렇게 그가 설계한 스피커들이 하나씩 세상에 나오면서 계약했던 5년이 지나가 버린다.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과 함께 2차대전이 끝나고, 이듬해 계약기간을 끝낸 랜싱은  알텍에서 나와 James B. Lansing Sound Incoprated라는 이름의 회사를 차리게된다. 그리고 이회사가, 지금의 JBL의 전신이 된다.

.

James B. Lansing 은 1902년 미국 일리노이즈주에 있는 작은 마을 고핀에서 태어났다. 탄광기사였던 아버지 밑으론 13명의 형제가 있었고 그중에서 그는 아홉째였다. 본명은Jaems Martinini. 어린시절부터 손재주가 좋은 아이였고, 아마츄어 무선사라던가 축음기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며 자라갔다. 고등학교 졸업후 자동차 수리공으로 사회의 첫발을 디딘 그는 아마츄어 무선사를 했던 경험을 살려 솔트레이크에서 라디오 송신기사 노릇을 하게된다. 이 도시에서 그는 그의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났고, 후에 그의 중요한 동료가 되는 Ken Decker를 만나게된다. 1929년 그들은 LA에 ‘Lansing-Manufacturing’ 이란 이름으로 간판을 내걸고 회사를 설립한다.

그는 – 소비가 미덕이던 과잉생산의 황금기에 사업을 시작해 대공황의 악몽속에서 도무지 현실성없는 스피커들을 만들어 나갔다. 위조된 꿈을 그려내던 시어터, 그 드넓은 공간을 울리기 위해 그의 스피커들은 언제나 거대하고 또 요란해야 했다. 과잉이라고 할만큼의 박력이 있어야 했다. 과장된 저역, 과장된 소리. 지금의 JBL의 장단점들은 어쩌면 그 시절부터 그들의 이마에 아로새겨진 일종의 주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더크게 더욱세게, 동시에 너무도 투명하게, 아름답게. 세상은 더럽고 황폐하지만, 이곳에는 꿈이있는걸 희망이 있는걸. 절망의 나락속에서 사람들은
알콜병을 껴안은채 죽어갔어도, 감기는 그들의 귓가에서 마저 그 아름다운 소리들이 메아리치도록.

자신의 이름을 딴 새로운 회사를 세운 랜싱은 다시 의욕적으로 스피커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매니아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유닛 D-130풀레인지 스피커와 175드라이버. 직경4인치의 보이스코일과 알루미늄재질의 센터돔, 만곡형 콘지, 자속밀도가12000 가우스가 되는 강력한 알니코 V자석 채용. 그당시로서는 신기에 가까운 스피커였지만 경영수완이 없던 그는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결국 1947년 주식 40%를 양도하는 조건하에 ‘Marguardt’항공사로 부터 경영자금을 이끌어 쓰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이때 당시 ‘Marguardt’의 경리부장이었던 Willian H. Thomas를 만나게 된다. 그는 곧 회사의 중역으로 영입되게되고, 후에 JBL을 이끌어가게된다. 1947년 캘리포니아주의 베니스에 있던’Marguardt’항공사의 공장내로 공장을 이전하게 된 그의 회사는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1948년 또다시 대단히 큰 적자를 보게 된다. 결국은 ‘Marguardt’의 합병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으나, ‘Marguardt’역시 곧 당시 유수기업이었던 ‘General Tire’사에 넘어가고 이와중에 토마스 역시 항공사에서 나와 JBL의 재건을 위해 랜신을 돕게된다. 1949년 회사를 다시 LA의 후렛쳐 드라이브로 옮기고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던중 당시 미국의 재력가였던 ‘Robert Anold’의 지원을 받게된다. 그의 도움 으로 알니코V영구자석을 2년간 무상으로 공급받게된 랜싱은 계속해서 연구에 몰두하게 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영부진은 계속되어만 간다. 부채는 2만달러 까지 늘 어나고, 랜싱은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된다.

1949년 9월 29일.
James B. Lansing은 공장을 한번 둘러본후 아끼던 느티나무에 목을매어 자살을한다.  그의나이 47세의 일이었다.

그를 동업자 이전에 숭배자로 여기던 홀름의 경영아래 랜싱의 생명보험금이었던 1만달러 기반으로 전직원이 합동하여 회사를 살리기 위해 나서게 된다. 1955년 JBL의 ‘Hartfields’는 발표후 격찬을 받으며 ‘Life’지의 표지로 등장한다.스테레오 시대가 도래하고 미국은 전쟁직후 역사상 유래없던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1957년 ‘Paragon’을 발표하고 JBL은 전세계 오디오 매니아들의 격찬을 받으며 다시한번 정점에 오르게 된다. 고도자본주의시대. 휘발유로 잔디를 키우고 집집마다 커다란 자동차를 과시하며 주말마다 아이들을 파티에 보내는. 집집마다 TV 가 들어오고 모든 산업이 최대호황을 누리며 소비가 미덕이고 낭비가 미덕인 고도 자본주의시대. 그 황금기가 도래하게 된다. 랜싱의 스피커가 보여주던 바로 그시대가 도래한것이다. JBL은 스튜디오 시리즈를 전세계에 흩뿌리고, JBL은 집집마다 침투하여 더이상 극장에서 숭배되는 되는 스피커가 아닌, 수많은 거실한켠에서 소비되는 대량 생산품이 되어간다.

현재 JBL은 세계적인 오디오 기업 하만인터내셔널의 산하에 있다. 이젠 스테이지를 울리는 PA와 카오디오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만 사는 자사의 염가제품 에도 JBL의 브랜드를 붙이는 일이 잦아서, JLB의 라인업엔 정체모를 스피커들이잔뜩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통적인 덴마크 생산이 아닌, 대만이나 일본 생산품 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AV쪽에선 여전히 많은 평을 받고 있지만, 하이엔드라는 차원에선 한발 밀려난 모습이 역력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과잉의 시대를 살고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선가는 대공황때처럼 내지는 2차대전때처럼 누군가가 굶어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총에 맞아 죽 겠지만 JBL의 소리가 울리는 공간 내에서 그런것들은 왠지 먼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질듯 생각이 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연구실에 틀어박혀 스피커설계만 했던, 그리고 자살해버린 랜싱의 생애처럼.
문을열고 나가지 않는 이상 문안에 세상에선 여전히 눈앞에 과잉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타이트한 락비트가 분노가 아닌 취향이 되는 시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땅에서 고도자본주의사회를 살고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있다.
그리고 문밖에는 여전히 누군가가 죽어간다. 그런법이다.

좋은하루 되시길.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