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의 비치보이스



소주에서 맥주로 맥주에서 양주로 다시 폭탄주로 이어지는 강행군 -그해 겨울의 망년회에서, 스무명에 달하던 인원은 3차 4차를 거치며 아홉명 열명으로, 다시 네명 다섯명으로 줄어들어가고 7차까지 끝난 새벽 다섯시를 기해선 아무도 없이 멀뚱히 나혼자 거리에 남아있었다. 2005년 12월. 강남의 어느 이름모를 골목은 미친듯이 추웠으며 술취해 일행을 잃어버린 서울시 거주 26세 전모씨는 올라오는 취기와 비어버린 지갑으로 인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어깨를 잔뜩 움추린채 그 거리를 서성거려야 했다. 잡아두었다는 숙소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으나 사방에 널려있는 모텔사이에서 대체 어디에 그 모텔이 있는지 찾을수 없었고, 근처를 몇바퀴나 뱅글뱅글 돌고 나서야 겨우 모텔을 찾은 후에는 대체 몇호실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갔는지 알수가 없었고 카운터 직원에게 사정사정 하여 대충 회사동료들로 보이는 일행이 들어갔다는방에 전화를 해보았으나 도대체 받는 사람이 없었다.

어쩐지 불쌍한듯이 쳐다보는 여직원을 뒤로한채 모텔에서 걸어나와 수어분간 고민을 하다, 머리를 벅벅 긁은후 모텔 야외 주차항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날은 정신이 나갈만큼 추웠고 바람도 제대로 막아주지 못하던 야외주차장엔 침대도 이불도 따뜻한 물한컵도 있을리 없었지만, 어쨌든 담배가 한갑이나 남아있었고 밤새들어도 다 못들을 개수의 노래가 들어있던 아이포드의 배터리도 빵빵했으니 어떻게든 아침까지는 버틸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렇게 – 가방을 베개삼아 드러눕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보다 나빴던 적이 있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지만, 그래도 담배마저 없는것보다야 다행스럽지 않니 중얼거리며 이어폰을 귀에꼽고 아이포드의 플레이버튼을 눌렀다. 랜덤 재생한 아이포드에선 거짓말 마냥 비치보이스의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고, 담배 몇대를 더 피워대며 나는 그들이 노래하는 바다를 그리고 여름을  – 그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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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est coast has the sunshine. And the girls all get so tanned.
I dig a french bikini on hawaii island. Dolls by a palm tree in the s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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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태양이 거짓말처럼 빛나고, 수영복을 입은 소녀들의 미소가 빛나고 시간의 흐름마저 이 백사장의 따스함 아래선 살짝 게을러져버릴것 같은 여름. 파라솔, 칵테일, 비치발리볼, 짭짜름한 바다냄새사이에서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채 달콤하게 노래부르는 브라이언 윌슨의 미소,.같은 그런.

이상하지. 난 살아생전 단 한번도 그런 해변따윈 가본적이 없는걸. 그러니 그런 낭만적인 해변의 여름같은건 경험해본적도 없는데. 내가 기억하는 바다래봤자 대체로 쓰레기 더미 데굴데굴 굴러다니던 다 망해가는 시골 해수욕장이거나, 원자력발전소 너머 보이는 그저그런 뻔한 수평선 뿐이었음에도. 어째서나는 스물여섯살의 술취한 겨울 낯선 모텔 야외주차장에 누워서 알지도 못하고 가본적도 없는 비치보이스의 여름을 그리워 했던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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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sh they all could be california
I wish they all could be california
I wish they all could be california gir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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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에서 남자는 말한다.
‘양키들은 우리의 무의식을 식민지화 했어’
수십년의 시간이 지나고, 수만리의 거리가 떨어진 2005년의 서울 어느 골목에서 조차,
여전히 이대사는 유효하다니.